4차 산업혁명 시대 등 기술혁신과 함께 산업·직업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불확실성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저출산과 이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 공급 측면의 변화 역시 빠르다. 이러한 변화는 평생직업교육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8년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에서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 허브’로서 지역사회의 산업인재를 양성하는 거점기관으로 육성한다는 정책적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또 ‘디지털 시대의 열린 평생교육·훈련 혁신방안’ ‘미래교육 전환을 위한 10대 정책과제’ 등에서 비대면 평생교육 활성화, 일-학습-삶 연계 강화를 강조하며 평생직업교육에 대한 지원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제 기존 틀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대학의 구조를 변화하고, 기능과 역할을 재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전문대학 평생직업교육 활성화 방향’을 9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이정표 한양여대 교수(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위원) 1960년대 OECD가 평생에 걸친 직업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래 직업교육은 평생교육의 핵심영역으로 부각됐다. 세계 각국은 평생직업교육을 개인에게 계속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국가경쟁력 확보와 자국의 생존 전략으로 강조하고 투자를 확대했다. 이류교육으로 인식되던 직업교육 역시 평생교육의 강조로 평생에 걸친 전 국민들을 위한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 For All)으로 거듭난 것이다.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에서 정체성과 교육의 본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전문대학이 본격적으로 평생직업교육대학임을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2020년 11월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국책연구소, 전문대학이 함께 참여한 ‘전문대학 평생직업교육 발전협의회’가 출범했다. 평생직업교육은 전문대학의 본연의 기능이자 사명이라는 집단적 의지를 밝힌 것이다. 평생직업교육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전문대학의 내부적 결단과 각오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행·재정 지원에 있어서 평생직업교육 정책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요구하는 전문대학의 열망도 담겨있다.
△ 평생직업교육과 관련한 국내 최대 규모의 협의체가 지난해 출범했다. 중아부처,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 전문대 등 평생직업교육 분야 유관기관들이 모두 모인 전문대학평생직업교육 발전협의회가 발족했다. (사진=한국대학신문)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정책 선도가들의 의지와는 달리 전문대학 현장에서는 평생직업교육으로의 전환이 시급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전문대학 교무처장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를 보면, 전문대학의 혁신 전략 중요도 순위에서 평생직업교육 기능 강화 과제는 후순위로 물러나 있다. 급감하고 있는 입학생의 유치나 수요기반 교육체제 개편 등에 비해 전문대학에서 평생직업교육은 서둘러 준비할 만큼 시급한 과제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나 역량 차원에서 역부족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급속한 지식기술의 변화로 전문대학은 전통적인 신규고졸자 중심에서탈피해 성인학습자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분명 전문대학의 정체성은 평생직업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평생직업교육이 전문대학만이 가질 수 있는 독점적 기능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평생직업교육은 전문대학뿐만 아니라 대학을 포함한 공공 및 민간직업훈련기관들의 미래의 먹거리이자 생존전략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폴리텍대학은 ‘평생기술로 평생직업’이라는 슬로건으로 정부의 적극적 보호와 지원 아래 계속 확장 일로에 있다. 일부 연구중심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반대학 역시 성인학습자 대상 평생직업교육을 미래의 교육 전략으로 삼고 있다. 교육부는 오랫동안 다양한 사업명칭으로 일반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전환을 지원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대학은 평생직업교육시장 확보를 두고 폴리텍대학이나 일반대학과 공정한 경쟁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폴리텍대학은 정부의 행·재정지원을 받는 공공교육기관으로 재정 확보나 학습자 확보 측면에서 경쟁대상이 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최첨단 시설 장비로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자랑하는 폴리텍대학과 등록금에 의존하며 연명하는 전문대학이 선의의 경쟁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일반대학의 브랜드를 선호하는 대한민국의 학력사회에서 전문대학이 일반대학과 경쟁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간직업훈련기관들 역시 조직의 생존을 위해 품질 좋은 훈련과정과 최첨단 시설 여건, 그리고 실력있는 교강사로 무장하고 있어 전문대학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다.
그동안 전문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평생직업교육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를 경험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SCK사업의 4유형으로 10개의 평생직업교육대학이 참여했고 2019년부터 시작된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의 3유형인 후진학 선도형 사업에는 2021년 현재 전문대학의 3분의 1 수준인 46개 전문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가 주관하는 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지원 사업에 2019년부터 7개의 전문대학이 지원받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전문대학이 성인대상 평생직업교육으로 지평을 넓히고 교육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후진학 선도형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 관계자나 성인학습자들이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과정 운영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조사 결과를 보이고 있어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체제 전환 가능성은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그러나 전문대학들은 여전히 사업 수행을 통해 평생직업교육을 수행하는 데 적지 않은 한계와 장애를 느끼고 있다.
평생직업교육은 전문대학이 분명 지향해 나가야 할 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 전문대학이 자구적으로 장애요인을 해결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전 국민을 위한 평생직업교육 보장은 국가의 책무이자 핵심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는 전문대학이 정체성을 갖고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장벽을 제거하고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에 정체성을 두고 기능을 활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해결돼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전문대학의 정체성이 평생직업교육임을 법령상에 분명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다. 전문대학의 교육 목적이 전문직업인 양성과 지역주민 및 근로자 등의 평생직업교육이라는 점을 ‘고등교육법’에 명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평생교육법’ 개정을 통해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추가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에서는 대학의 평생교육 기능을 학교의 평생교육(제29조)과 학교부설 평생교육시설(제30조)에 국한해 명시하고 있다.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의 평생교육이라는 조문을 추가하고,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법’과 ‘평생교육법’에 전문대학의 교육목적을 평생직업교육으로 명시할 때 전문대학의 정체성이 확보되고, 정부의 안정적인 행·재정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에 명시된 것처럼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의 허브로 육성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다.
둘째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한다. 94%가 사립으로 구성된 전문대학은 오랜 등록금 동결과 함께 입학자원의 감소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전문대학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2018년 기준 OECD 평균의 46.6%로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조차 전문대학이 생존을 위해서는 성인대상 평생직업교육으로 생존의 돌파구를 찾아가라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립 전문대학이 정부의 보조금이나 재정지원 없이는 급변하는 직업 환경에 대응해 경쟁력 있는 평생직업교육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보유하고 있는 직업능력개발사업비를 전문대학에 연계, 지원해 줘야 한다. 사립 전문대학은 사익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고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공익 교육기관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평생직업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대학이 축적하고 있는 내재적 직업교육역량과 여건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처럼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분리된 일본과 미국에서는 대학의 산학협력 및 평생직업교육 촉진을 위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사업을 설계하고, 고용노동부가 사업운영을 위한 재정을 지원해주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협력적인 평생직업교육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 이번에 발족한 ‘전문대학 평생직업교육 발전협의회’에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배경에는 평생직업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자간 협력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지역 내 협력적인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서는 ‘평생교육법’에 규정된 시·도 및 시·군·구평생교육협의회를 비롯한 시·도평생교육진흥원, 시·군·구평생학습관 등 지역 내 평생교육 추진 및 전달체제와의 협력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전문대학 관계자가 시·도평생교육협의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해 지역 평생교육진흥 계획 수립과 교육 프로그램 설계 및 개발, 운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발판이 마련돼야 후진학 선도형 사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전문대학이 지역 내 직업교육거점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지역 산업체와의 연계 강화를 위해 지역 인적자원개발위원회와의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대학의 정체성은 분명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평생직업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후진학 선도형 사업은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을 준비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사업 과정에서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부처 간 소통과 협력이 강화되고, 재정 지원규모가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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