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와 코드 맞춘 메타버스 활용 입학식, 축제, 교양 수업 메타버스 공간에서 펼쳐 "코로나 시대에 최소 비용 들여 최대 효과 창출"
△ 메타버스에서 열린 순천향대 입학식
사회적 거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마스크는 패션일 뿐, 쓰든 말든 구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캠퍼스 이곳 저곳을 누비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대학 생활의 꽃이라는 축제와 동아리 활동도 즐길 수 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교양강좌를 듣고 수업 후에는 손을 들어 교수님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게 메타버스(Metaverse) 속 캠퍼스에서 가능한 일이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단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3차원의 가상 세계에서 구현해내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1992년 출판된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언급된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도래한 비대면 상황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디지털 친화도가 높은 MZ 세대의 성향과 맞아떨어져 큰 시너지를 일으켰다.
■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대학들
MZ세대가 많이 모여 있는 기관 중 하나인 대학도 메타버스의 시류를 빠르게 읽었다. 순천향대는 지난 3월 순천향대 대운동장을 메타버스에 그대로 옮겨 세계 최초로 가상 (Virtual) 입학식을 개최했다.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원종원 교수(브랜드전략실장)는 "순천향대의 메타버스 활용은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일입니다. 대학들이 메타버스를 몰라서 활용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시도 자체가 어색했기 때문에 활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올해를 작년처럼 아무런 행사 없이 보내버린다면 대학에 큰 위이가 올 것이라고 보았습니다."라며 메타버스 입학식을 위해 SK텔레콤의 '점프VR'과 협력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순천향대의 도전은 성공했다. 실제 캠퍼스에 학생들을 모을 수는 없었지만 약 2,500명의 새내기는 자신이 속한 단과대 점퍼를 입은 아바타를 만들어 총장 환영사를 듣고 신입생 대표 입학선서도 함께했다. 57개 학과가 150여 개의 방을 개설해 신입생들이 만늘 수 있도록 해줬고 캠퍼스 투어는 물론 담당교수와 첫 대면 역시 메타버스 속에서 이뤄졌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모습에 학생을 비롯한 대중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원 교수는 "대학이라는 곳이 캠퍼스 시설로 제한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 속 한 켠에 자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고민이 결실을 보았습니다." 고 말했다.
순천향대를 시작으로 다른 대학들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건국대는 VR개발업체인 플레이파크와 협력해 건국대를 메타버스 세계에 구현해 'Kon-Tact 예술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건국대학교 김강은 총학생회장은 "건국대 캠퍼스 전체를 담는데 신경을 많이 썼고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플랫폼을 선탞했습니다." 고 말했다. 예술제 기간에 참여한 학생들은 건국대 재학생만 5만 5천명이다. 이는 건국대 재학생 3분의 1에 달하는 숫자로 말 그대로 '흥행 대성공'이었다.
건국대 총학생회는 가상공간 갤러리인 VVS(Vivid VR Show room)에서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건국대 캠퍼스 고양이인 '만쥬'를 찾는 미션을 부여한 방탈출 게임을 프로그래밍해 학생들에게 즐길 거리도 선사했다. 또한 건국대 동아리들이 사전에 준비한 공연들을 촬영해 메타버스에 만들어진 노천극장에 송출하는 등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김회장은 "건국대 학생들의 소속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건국대 아이디로만 접속할 수 있게 제한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커뮤니티와 타대학에서 행사를 좋게 봐주면서 우리 축제는 신선한 비대면 축제로 주목 받았습니다. 우리 학생들을 만족시킨 것 같아 뿌듯합니다."고 소회를 전했습니다.
△ 게더타운에서 열린 숭실대 축제 모습
■ 비용을 최소화한 메타버스로 최대효과 창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는데 문제는 비용인 경우도 있다. 메타버스 전문가인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김상균 교수는 "예산 집행 부분에 있어서 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타버스 플랫폼에 가입해서 현실을 구현해 내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바타가 다양한 착장을 할 수 있고 캠퍼스가 3D로 더 자세하게 구현될수록 비용은 상승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대학에서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이상 고도의 메타버스 구현은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길을 찾는 학생자치회들도 있다. 숭실대 학생회와 연세대 동아리연합회는 '게더타운'이라는 간소화된 메타버스 플랫폼을 선택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메타버스만의 최대 효용을 누렸다.
'게더타운'은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과 2D 게임 '바람의 나라'와 같은 그래픽 형태를 접목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미국에서 개발된 게더타운은 전 세계적으로 최근 활용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숭실대는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과 힘을 합해 게더타운에서 숭실대 캠퍼스를 만들었다. 아기자기하지만 충실히 구현된 숭실대 캠퍼스 에서 벌어진 이틀 동안의 온라인 축제는 동시 접속자 최대 300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숭실대 김채수 학생회장은 "일단 게더타운을 안정적으로 상요하기 위해 서버 비용 4만원을 들였고 캠퍼스 구축은 온전히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 학생들의 힘만으로 해냈습니다."고 설명했다. 제페토 같은 3D 메타버스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2D 메타버스는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학생들끼리 자체적으로 맵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접이 있다.
연세대도 게더타운을 이용해 동아리박람회를 열었다. 연세대학교 동아리박람회 한은빈 기획단장은 "게더타운은 회원가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리하고 캐릭터가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화상화면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웹페이지로 동아리를 소개할 때는 일방적인 전달만 가능했지만 메타버스를 활용해 정보전달과 소통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가령 미디작곡 동아리 방 앞에 가면 동아리 학생들이 제작한 음악이 자동 재생되고 만화 동아리 앞에 가면 동아리 소개와 가입 폼이 노출되는 식이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동아리 방에 대기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직접 질문도 할 수 있다.
■ '한국판 뉴딜' 업고 더 크고 다양하게 활용되는 메타버스
정부도 메타버스 플랫폼 활용이 늘어남에 따라 메타버스를 디지털 뉴딜의 핵심 정책 과제 리스트에 올리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는 7월 14일 '한국판 뉴딜 2.0'을 통해 메타버스와 탄소 중립을 신성장 산업 과제로 추가했다. 이로써 2025년까지 기존 160조 원으로 책정됐던 총사업비도 220조 원으로 확대됐다.
이런 지원에 발맞춰 대학들의 메타버스 활용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작년에 열리지 못했던 고연전이 올해 9월에는 메타버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고려대와 SK텔레콤은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협약식을 갖고 스마트 캠퍼스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고려대와 연세대는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를 활용해 두 학교 학생들이 메타버스 경기장에서라도 역동적인 응원과 열띤 대결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순천향대는 'SCH 꿈을 찾는 강좌'와 '찾아가는 대입설명회'를 메타버스로 이어갈 계획이다. 원래는 오프라인에서 고등학교 현장과 대학을 이어주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코로나19로 축소되거나 이전처럼 크게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메타버스를 통해서 오프라인 못잖은 활동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건국대와 숭실대도 구축해둔 메타버스를 유지하며 더 개선해 학생 자치활동에 사용할 계획이다.
△ 메타버스에서 구현된 건국대 캠퍼스를 누비는 건국대 학생
■ 메타버스는 유행일까 새로운 미래일까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코로나19를 넘기기 위한 순간의 대안일까? 강원대학교 김상균 교수는 메타버스를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왜 나타났는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강 교수는 "인간은 탐험 욕구, 성취욕, 소통 등에 대한 기본적인 욕망이 있는데 이런 욕망들이 코로나19로 위축된 상태에서 메타버스가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장소로 떠올랐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한 번 써보고 좋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지 계속 찾기 때문에 메타버스 이용이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예측했다.
순천향대 원종원 교수도 "메타버스는 코로나19와 무방하게 앞으로도 활용될 것입니다. 지금은 대안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영역의 확장'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말입니다. 누가 메타버스를 활용해 얼마나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적재적소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다만 대학들이 메타버스 활용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메타버스도 결국에는 '도구'일 뿐이기에 메타버스 안에 무엇을 담아낼 지 고민해야합니다."고 조언했다.
또한 메타버스는 서울에 집중돼 있는 대학 문화를 완화할 수 있는 키워드로도 언급되고 있다. 어디서든 양질의 수업을 듣고 캠퍼스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누릴 수 있는 배경을 베타버스가 마련해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역 중심의 대학 특성화보다 메타버스를 활용해 교수 개인역량 중심의 특성화를 한다면 대학이 '거리'를 막론하고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이처럼 활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메타버스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면수업이 다시 가능해지면 교실에서 필수로 채워야 하는 수업시수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메타버스 기반의 온라인 수업은 아직 '미래'에만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메타버스를 향한 규제와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함께 현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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