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창작할 기회를 제공하는 메이커스페이스 시제품 제작 외에도 창업 전반에 대한 정보와 지원 제공 일반랩과 전문랩으로 나눠 필요에 따라 기술지원과 제반 지원 달리해 실질적인 수익성 떨어진다는 비판에 "저변 확대 시간 필요했고 전문랩 중심 창업 지원 계획 중"
대학이 학과 강의를 듣는 공간에서 '창작의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가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체화하기 위해 메이커 스페이스를 찾는 모든 이들은 '메이커(Maker)'다. 이 창작자들은 전문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도 기술자도 아닌 경우가 많지만 메이커스페이스를 통해서 창작의 열정을 드러내고 창업의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 '만들기(Make)'는 인간의 숙명, 일반랩과 전문랩으로 나누어 지원
기계와 대자본 위주의 제작 시스템이 돌아가는 상황이 주류가 된 요즘 개인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수요는 현저히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간의 창작 욕구는 ICT 분야의 성장에 힘입어 그 영역을 더 넓고 다양하게 확장해 나가 현재에 이르렀다.
현시대의 메이커는 디지털 기기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메이커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만든 결과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메이커들은 아이디엄나 있다면 손쉽게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시제품을 통해 제품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프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메이커스페이스는 다시금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도울 수 있는 기관이자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흔히 이런 메이커들이 모여서 하는 활동을 '메이커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사상적 배경에는 공유경제와 크라우드 펀딩, 마을 공동체 운동 등이 있고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아크릴 용접기, CNC 설비 등의 기술적 배경이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2010년대 초중반 메이커의 개념을 대대적으로 언급하며 메이커들의 창의성이 산업의 중심이 될거라 강조한 바 있다. 2009년 오바마 정부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정책을 추진하며 미국 내 메이커스페이스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제레미 리프킨 같은 저명한 미래학자들도 미래기술들이 '메이커의 시대'를 구축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는 2013년부터 정부 주도의 메이커 문화가 확산돼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까지 제조창업 지원 목적의 전문랩 12개를 비롯해 전국에 메이커 스페이스 192개소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일반랩은 일반인 대상 메이커 입문 교육 및 창작활동 체험을 지원하고 전문랩은 전문 창작활동, 시제품 제작과 창업지원을 인프라와 연계해 사업화 지원하는 것을 중점으로 운영된다.
지난달 29일에는 '2021년 메이커스페이스 구축·운영 사업 주관기관 모집 공고'를 통해 추가 모집한 전문랩 7개, 민간협업 전문랩 1개, 일반랩 15개, 특화랩 3개의 명단을 발표했다. 민간협업형 전문랩의 경우는 전문랩의 제조창업 고도화를 위해 대기업과 전문랩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기업의 혁신자원을 지원한 첫 시도다.
◑ 대학 메이커스페이스, 제작 체험부터 전문 창업까지 전방위 지원
메이커스페이스 구축은 대학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고등 교육기관이자 산학협력의 주체이며 잠재적 예비 창업자들을 끊임없이 수급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상명대 메이컷페이스 총괄책임자인 세라믹디자인 김희균 교수는 "전문메이커의 고도화된 창작 활동을 지원받길 원하고 제조 창업으로 본격적으로 해볼 사람들은 전문랩을 찾는 게 맞다고 본다. 메이커스페이스 일반랩은 창업 전 교육과 시제품을 직접 메이커가 만들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지원하는 메이커들의 활동이 언제나 '창업'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창업 성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라며, "창업을 위한 3D 프린터 사용을 메이커스페이스의 주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창업은 메이커스페이스의 '본질'이 아니다. 메이커스페이스의 역할도 '시제품 제작'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메이크스페이스는 창업 관련 교육, 시제품 제작, 공간 대여, 아이디어 자문, 브랜딩 기획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들러 큰 그림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대학 메이커스페이스는 학생과 일반인 모두가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국대, 백석대, 상명대, 호서대, 백석분화대 등 5개 대학이 밀접한 천안 안서동 같은 경우는 학생 이용자들이 많은 편이다. 상명대 임효영 메이커스페이스 사업단 연구원은 "학생들이 창업이나 논문을 위한 모델링 출력을 많이 의뢰받는 편이다. 메이커스페이스가 구축되기 전에는 모델링을 해보려면 많은 돈을 들여 외부 업체를 이용했어야 했는데 그런 번거로움이 사라졌다고"고 말했다. 대학 안에 위치하다 보니 학생들은 '접근성'을 큰 이점으로 꼽기도 했다.
대학이 메이커스페이스 일반랩으로 다수 지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랩을 공모할 때도 시민들에게 인지도가 높으며 생활 속에서 쉽게 접근 가능해야 하고 교육, 여가, 소비 욕구가 높은 인구밀집지역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다.
◑ 단순 시제품 만들기에서 더 진화하고 있는 메이커들의 공간
메이커스페이스가 생기기 전에는 창작 아이디어가 생겨도 실제 창작품을 구현해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투자를 받거나 실제 제작 후 사용감을 보기 위해서는 소량 생산이 필요하지만 물품 개당 비용이 수지에 맞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메이커스페이스에 있는 장비들은 이런 부분들을 보완해준다. 아이디어가 도출되면 3D 프린터, 3D 스캐너, 레이저커터, CNC 조각기 등의 장비를 무료 혹은 최저비용으로 사용해 시제품 제작이 쉽게 가능하다. 도면 내용에 따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이틀이면 자신이 창작한 제품 하나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일반랩과 전문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고려대 크림슨창업지원단을 맡고 있는 기계공학과 정석 교수는 "메이커가 IR(투자자 대상 사업설명회)에 나설 때 시제품은 중요한 요소다. 한 개를 정확하게 만들어서 내보일 때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더 높다. 거의 80~90%에 가깝게 완성본을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제품 제작은 제품의 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정 교수는 "만들어보고 바꾸는 게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용이하다. 앞으로는 더욱 진화한 시제품 제작 과정을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말에 선정된 메이커스페이스 중에는 민관협력형 전문랩이 있다. 이제까지의 랩들이 대학과 민간업체에 개별적으로 지원을 했다면 이번에는 두 주체가 협력해 전문랩을 꾸렸다고 보면 된다. 사이버 · 물리시스템(CPS)에 기반으로 가상과 실제를 융합해 제품 설계와 제작에 나선다.
민관협력형 전문랩인 '3D 제조 버추얼랩'은 국내에 처음 도입되는 사례로 3D 설계와 시뮬레이션 분야 세계 1위 다쏘시스템과 고려대 컨소시엄이 힘을 합쳤다. 해당 랩은 시제품을 구현하는 데까지 생기는 오류는 파격적으로 줄이고 재료는 더 아끼는 시뮬레이션 단계를 제공한다. 랩에서는 CPS 기반의 정밀 설계, 모델링, 시뮬레이션 및 가상실험·분석·평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전주기 클라우드 디지털 플랫폼을 갖춘 3D 센터와 가상현실에서 제품 검증이 가능한 VR 기반 메타버스 스튜디오를 구축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지금은 시뮬레이션 도입이 초기지만 시제품을 만들 때부터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한 번에 창작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고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상당한 기술력이 들어간 제품의 경우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이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기술 에러를 수정과 보완해 나간다면 환경도 지키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학생들은 창업뿐만 아니라 취업과 취미활동을 위해서도 메이커스페이스를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다. 대학 메이커스페이스를 꾸준히 사용중인 S는 "목공 동아리를 운영하며 메이커 스페이스를 자주 들르는데 직접 물건을 만들어보면 도면만 보고 상상할 때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지금은 한 회사와 함께 캡스톤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이론으로만 배우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지 모를텐데 이렇게 직접 설계한 제품을 출력해보고 고민하면 더 효율적이다"고 추천을 남겼다.
◑ 메이커스페이스 효과는 거품? 저변 확대의 시기를 지나는 중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관련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제조창업 생태계는 점점 생동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다. 중기부가 발표한 '2022년 창업기업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창업기업은 전년 대비 4.6% 줄어든 4만 9928개다. 반면 창업기업은 148만 4668개로 집계되며 전년 128만 5259개와 비교해 15.5% 늘었다. 창업 분야도 부동산업이 29.5%로 크게 증가한 모습이었다.
중기부 산하 창업진흥원이 발간한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운영사업 성과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구축된 65개 전국 메이커스페이스 기준으로 창업기업 배출 성과가 있는 기관은 21개소로 전체의 32.3%에 불과했다. 44곳은 창업기업을 하나도 배출하지 못했다. 메이커스페이스와 제조현장에는 메이커스페이스를 통해 제조창업 활성화하려면 전문랩이 많아야 하는데 일반랩이 많다는 지적과 랩 간의 교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순천향대 메이커스페이스인 '나눔 창작소'를 맡고 있는 백승철 담당은 "일반랩은 자연스러운 메이커 활동을 통해서 메이커 문화를 확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인 활동일지라도 충분히 창업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대학을 통해 아이디어만 있어도 해볼 수 있다는 '시도' 자체가 긍정적 효과"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정석 교수는 "수익으로 이어지는 제조 창업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나 코딩도 메이킹의 일환이다"라며 창업 활동에 필요한 제반 사업 전반을 지원하는 것 또한 메이커 스페이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메이커스페이스에서는 비즈니스 모델로 도약하기 위한 기술 자문은 물론 특허권 관련 자문, 기타 문의 내용을 해결할 수 있는 네트워킹 지원 등을 두루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메이커 문화 자체를 국민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만들고 누구나 어디서든 메이커가 될 수 있따는 인식을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메이커스페이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벤처부 이용범 사무관은 "그동안은 메이커 문화 활성화와 저변 확대에 힘썼고 성과도 거뒀다. 앞으로는 실질적인 창업 성과를 위한 전문랩을 보강하고 메이커스페이스 간의 약하다고 평가됐던 네트워킹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부는 남은 사업 기간 동안 전문랩의 고도화와 메이크올(Make All) 홈페이지 리뉴얼을 통한 플랫폼 강화 계획이 있다고 덧붙였다.
☞ 메이크올 (makeall.com)
☞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1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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